야고들의 합창소리가 멀리서 들려
합창소리를 따라 하늘공원으로 달려갔답니다.
예초기들의 소리가 들립니다.
그런데 어쩌나요
가까이에서 예초기 소리가 들려오네요.
갈대들이 베어지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에서 들려옵니다.
갈대숲 속에 야고들이 있는데
하마터면 야고들을 만나지 못할 뻔했답니다.
21. 09. 14.
가을에 제주도를 여행하면서 억새가 자라는 곳을 유심히 보면 억새 가랑이 사이로 고개를 내민 야고를 쉽사리 볼 수 있다. 야고는 제주도 억새밭에서만 사는 기생식물로 알려져 왔는데 21세기가 시작될 무렵 어느 날 서울의 하늘공원에 나타났다. 공원에 억새밭을 만들면서 제주도 억새를 옮겨 심은 모양이다. 야고는 주로 동남아시아의 온난한 지역에 사는 식물이다. 어떤 연유로 상경을 했건 간에 서울에서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우려하는 지구온난화의 혜택을 누리는 셈이다.
난지도가 어떤 곳이었던가. 40년이 넘도록 서울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가 산을 이루어 사방 십 리에 파리 떼와 악취가 진동하던 버림받은 땅이 아니었던가. 생계가 어려운 사람들은 난지도에 모여들어 쓰레기 산을 뒤지며 폐지나 고철, 빈병 같은 것들을 골라내서 생계를 꾸려갔던 곳이다.
그곳을 제주도의 억새가 덮어주었고 얼떨결에 야고가 따라왔다. 그 거대한 쓰레기 산이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공원으로 천지개벽을 했다. 그 속살까지 온전히 자연으로 돌아가기에는 장구한 세월이 걸리겠지만 인간이 만든 쓰레기를 정화시켜 다시 자연의 순환 과정으로 끌어안은 대자연의 포용과 용서, 그리고 치유의 은사(恩賜)에 감사할 따름이다.
야고는 한자로는 ‘野菰’로 쓰고 중국 이름도 같은 야고이다. ‘野菰’라는 한자 이름은 ‘들판에서 자라는 골풀’이라는 뜻이지만, 습지에 사는 골풀과는 친척관계도 아니고 모양도 닮은 구석이 없다. 그런데 이 야고에는 ‘담뱃대더부살이’라는 멋진 우리말 이름이 있다. 이름만 들어도 ‘담뱃대를 닮은 기생식물’이라는 의미가 쏙 들어온다. 국화과의 꽃 중에 담뱃대를 닮은 ‘담배풀’이 있기는 하지만 야고는 기생식물이라서 아예 잎이 없기 때문에 담뱃대를 더 닮았다.
야고는 무언가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몸짓을 하고 있다. 이름이 좀 길더라도 '야고'를 ‘담뱃대더부살이’로 한 번 불러 보자. 할배의 담뱃대에서 뻐끔뻐끔 나오던 옛날얘기가 나올는지도 모른다.
출처: [BRIC Bio통신원] [아이디카의 꽃.나.들.이]186. 제주에서 서울로 보낸 선물, 야고 ( https://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268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