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전등사를 가끔 찾았지만
산성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처음 산성을 밟아 보았다.
조만간 공사가 끝나면 전등사를 둘러 쌓인 산성을 한 바퀴 돌 수 있을 것 같다
단군의 세 아들이 성을 쌓았다는 전설이 있어 삼랑성이라 부른다.
일명 정족산성이라고도 한다.
이 성이 만들어진 연대는 정확하지 않으나,
고려가 1259년 삼랑성 안에 궁궐을 만들었다고 하니 그 전에 이미 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성곽이 쌓여져 있는 모습을 보면 보은의 삼년산성이나 경주의 명활산성처럼 삼국시대 성의 구조를 찾을 수 있으므로,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성으로 추측된다.
고려 때 보수공사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영조 15년(1739)에 성을 다시 쌓으면서 남문에 문루를 만들고 ‘종해루’라고 하였다.
조선 현종 1년(1660) 마니산의 사고에 보관되어 있던 『조선왕조실록』을 성 안에 있는 정족산사고로 옮기고,
왕실의 족보를 보관하는 선원 보각을 함께 지었다.
그러나 지금은 둘 다 없어지고 전등사만 남아있다.
이곳은 고종 3년(1866)의 병인양요 때 동문과 남문으로 공격을 해오던 160여 명의 프랑스군을 무찌른 곳으로도 유명하다.
처음에는 흙으로 쌓은 토성이었는데 삼국시대에 이르러
그 위에 막돌을 맞추어가며 쌓았고 성체 안에는 막돌을 채운 튼튼한 석성으로 축조되었으며,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더욱 보강되었다.
1976년에 남문인 종해루를 원형대로 복원했다.
21. 06. 27.